2.8분기 회고-개강일기를 곁들인-
회고를 쓰게 된 배경
상반기 회고란 말이 무색하게 하반기의 1/3이 지나버렸고, 더불어 지난주에는 개강도 했다.
종강 개강 의미가 무색해진 직장인 주변인들을 만나 이야기하기엔 새삼스러운데, 대학원이란 환경이 있다 보니 새 출발 따위의 의미를 부여하기 나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. 마감이 가까워진 마당에 주중에 적당한 글감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말 오후를 <청춘시대> 복습에 날려버린 이 시점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<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회고> 이기도 하고. 그 지나가버린 시간은 작성하는 사람이 의미 부여하기 나름이니까.
최근의 이벤트
올 초?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촌동생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며 식사와 술을 대접한 자리가 있었는데, 그때까지만 해도 원래 이렇게 청첩장 모임을 일찍 갖던가?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, 그 긴 기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서 식을 올리게 됐다. 집구석 여러 복잡다단한 사정이 있는 관계 속 사촌동생의 결혼이었지만, 오래간만에(다음 주에 볼 거긴 한데...) 본 친척들에 대한 반가운 마음과 여러 복잡다단한 사연을 품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고 또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그 동생에 대한 축복과 기원은 진심이었고, 모인 이들도 다들 그랬을 테다.
그날 새로이 신경쓰였던 한 가지 지점은, 이 친척들 모임이 매번 새삼스럽고 오랜만이다 보니(명절에나 한 번씩 볼까 말까 한 데, 코로나 때문에 ), 나의 진로, 커리어 상태에 대한 질문을 (매번 받고 대답하지만) 받았던 것이다. 공부한다고 (사회적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기엔 좀 늦다고 여겨지는 나이까지) 버팅기는 인간이 많지 않은 집안에서 요즘 뭐하냐 물으니 나이가 30이 가까워지는 인간이 학교 다니고 있다니 새삼스러웠던 모양이다. 부모에게 손 벌리고 있는지, 24시간 공부하느라 미쳐있는 상태인지, 언제까지 그 상태여야 하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한 듯했다. 다행히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있진 않고, 주말이 없다는 너스레를 섞어 그래도 먹고사는 것 사람 다 똑같다고 적당히 대답하고, 졸업은 정해진 바가 없지만 빨리 하고 싶다, 앞으로 2년 정도는 더 보고 있다.. 정도의 대답으로 얼른 대화를 마무리 짓고 싶었으나 뒤이어 그거 나오면 취직 잘 되냐며 어디 가냐 등의 문답이 이어졌다. 물론 조카의 커리어에 대한 걱정일 테니 (이제는) 대화 자체가 스트레스는 아니게 됐다. 식이 끝나고 엄마와 데이트라고 간 카페에서 엄마는 일련의 대화를 언급하며 공백이 없게끔 미리미리 준비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했고, 해야지 해야지 이제 그만 얘기해! 하며 대화를 회피했다.
롯데월드에 다녀왔다.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일정이 있어 늦게 온다기에 오전부터 일찌감치 가서 혼자 즐겼는데, 썩 나쁘지 않았다. 이 이야기를 일기로 정리해서 써야지 한 지 꽤 시간이 됐는데, 이제야 겸사겸사 쓴다. 휴가철이어서 사람들이 다들 물가로 놀러 갔는지 도심의 롯데월드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. 그리고 혼자 다니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, 가끔은 뒷 줄에서 남은 자리가 있다며 먼저 타게 되거나 하는 베네핏을 누릴 수도 있었다. 기분을 맞춰 줘야 하는 누군가 (누군가는 또 맞춤을 받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)가 없다는 것이, 뭐 꼭 상대 기분을 100 맞춰줘 가면서 놀 필욘 없겠지만 최소한의 배려나 고려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인 점이 좋았다.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, 놀이기구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고. 그리고 이 한참 이런저런 놀이기구를 탔는데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반? 두 시간밖에 안 지난 거다!! 그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음... 바쁘다 바빠하면서 온갖 바쁜 척을 한다. 그 안에서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과, 불안과 걱정 때문에 오롯이 쉬기, 놀기, 어떤 형태로든 일이 아닌 것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주저하곤 하는데, 그 마이 신나게 놀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녀도 두 시간 밖에 안 지났네?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. 잠깐만 쉴까 하면서 딴짓을 시작해서 훌쩍 여러 시간을 흘려보내거나, 집중하지 못하고 웹서핑, 유튜브 잉 등을 동반하고서 중간중간일을 조금씩 했으면서 일했다고 주장하는 시간들이 분명 있을 텐데, 일과 쉼을 잘 구분 짓고 영리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(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참 어려운 그것) 새삼스럽게 깨달았달까. 그리고 혼자 놀이공원 잠깐 와서 노는 것도 좋은 휴식이라고 생각했다. 와글와글 하고, 뭔가 돌아다니고 해서 몸이 피곤한 것은 있을지언정 놀이공원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분명 있었다. 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갈래? 하고 제안한 친구 덕분에 어? 어어어... 하면서 가게 된 케이스라... 같이 가자고 부추겨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고 덕분에 엄청 리프레쉬됐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.
회고와 회개 그 어디쯤
- 파이팅 넘치게 보낸 기간이라고 하긴 어려웠던 것 같다. 왜인지(라는 말을 쓰기엔 이미 너무 이유를 잘 알고 있다.) 바삐 보낸 것에 비해 매듭지어지거나 완성된 결과물이 없고, 마주쳐진 상황에서 회피하려고 애썼던 날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.
- 회피하는 모습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, 많은 것들에 대해 회피하는 시간을 보냈다. 미팅, 발표, 눈 앞에 놓인 여러 일들... 당장 개어 정리해야 할 빨랫감들까지.
- 바쁘게 보냈다고는 하지만 결과물이 왜 없었겠는가, 밀도가 낮은 시간을 자주 보냈다.
- 사람을 너무 쉽게 미워하고 싫어했던 것 같다. 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것이 아니라 <아유 쟤 왜저래> 정도의, 그게 꼭 나에게 어떤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닌데도, 그러니까 단점을 열심히 찾았다고 할까. 싫어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.
- 언제는 미리미리 글감도 고민하고, todo list에 글 감 고민, 글 구성 등을 미리 적어두기도 했었는데, 마감 당일에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때가 됐다.
-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이나 연구와 관련 없는 글은 덜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... 이 점은 칭찬 해주고 싶다.. (스스로에게 관대한 편)
- 여러 종류의 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크로스핏에 정착했다.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정말 도움이 된다. 지금의 스스로에게 <이 지경>이라는 표현을 쓸 법한 상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운동을 놓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.
남은 2022년 다짐
- 초기 글또 다짐도 읽어보고 남은 글또 기간에 조금 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들을 써서 마무리해 보자.
- 논문 두 편 내자는 올해 목표를 꼭 좀 지켜보자.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.
- 타인에 줄 관심이나 혐오에 쓰일 에너지를 아껴 나를 단단히 하고 내 일들을 하는 데 쓰자.
-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체크해서 이루는 것들을 조금씩 습관화하고 이걸 일하고 공부하는 데에도 좀 적용해서 매듭짓는 연습을 해 보자.
- 운동을 꾸준히 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
- 기본적인 생활을 잘 유지하기 (잘 자고, 먹고 씻고, 특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가 중요하다고 하니,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연습을 해보자.. )
- 과한 욕심부리지 말고 오늘의 할 일을 설정하고 가능한 다 마치기.
단상
피하고 도망치는 것도 그에 대해 남겨지는 결과 <나에 대한 평가나 내 성과 부재 등>들을 내가 감수하겠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. 누군가는 자기 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나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렸던 선택이었고 대단히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. 속은 이런데 또 잘 지내고 하는 게...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했던 누군가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하게 사회생활이 가능한 점이 참 딜레마이다.
그리고 어쨌든 연구실이라는 작은 사회도 있고,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한 과제들도 있고, 그 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나 혼자 어디 들어가 숨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, 모든 걸 다 버리고 관 둘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.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지도교수님, 결국엔 다 지나가더라는 응원 주신 다른 교수님의 말씀에 감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..